툭,
위태롭게 이어 붙여두었던 무언가. 어느 비 오는 밤 아주 가늘어졌던 그것이 마침내 끊어진다. 사람이 붐비지도 지나치게 조용하지도 않은 가게 안, 생활 소음이 들려오는 구석의 마주 보는 한자리가 한계였다. 박음질이 시원찮던 실밥이 튿어지듯 연약한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터졌다. 그날로부터 겨우 두 달을 버틴, 조금 흐린 오후의 일이다.
"세이지는 나랑 뭐가 되고 싶어?"
나한테 뭘 원해?
이것으로 자그마치 세 번인가. 세 번의 순회 끝에 다시금 자리를 찾아 되돌아온 물음과 재차 얼굴을 마주한다. 어떤 감정도, 어떤 관계도 처음과 같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질문의 형태만은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서⋯⋯ 세상에도 이렇게까지 여전한 것이 있구나, 싶었다. 희미하게⋯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전처럼 화는 나지 않았다. 허탈한 숨이 새지도 않았다. 그저 지난 답을 복기한다. 다시 묻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도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이니까.
첫 번째 물음 앞에선 상처받았다.
두 번째 물음 끝에는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세 번째.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입으로 인정하는 탈선에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또렷하게 발음했으나 점차 끝이 흐려지는 목소리에 겨우 다시 뜬다. 매 순간 혼란을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명료하게 정의 내린 이의 얼굴을. 쏟아내었지만 결코 홀가분해 보이지 않는 기색들, 기나긴 교착을 마무리 지을 어떤 말을 기다리는 듯한 침묵을 차례로 마주 한다. 끝이 피고 있다. 약속대로 그것만큼은 나의 손에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을 뿐인 관계.
오랜 시간 무명이었던 이름과
비워두었던 답안지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
“그런 말로는 안돼요…….”
혼자서는 도저히 갈무리할 수 없는 곪은 감정들을 차근히 뱉는다. 장난 같은 말들과 친근한 듯 부르는 몇 번의 이름, 모두에게 적당히 내어줄 수 있는 웃음만으로 쉽게 정을 얻어내는 그 여유가 얄미웠다고. 선생이라는 자리를 명분 삼아 휘두를 수 있었던 그 타당성과 허울 좋은 변명들. 외로움과 약함을 가장해 붙잡아두던 손길이 적선과도 비슷한 것을 알았을 때 느껴야 했던 검정. 또…… 좁힐 수 없을 16년의 간극. 그로부터 기인한 홀둔함에는 종종 짜증이 났다는 사실을. 나를 대상으로 하던 당신의 모든 무신경한 말들과 무책임한 행동들이 싫다는 말까지 남김없이.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불분명함을 나는 결코 좋아할 수 없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게 하고, 몰라도 되는 감정을 알게 했다. 그 조금의 변색을 눈치채고, 오염이 두려워 끄트머리를 잘라내는 비겁함이 싫으면서도, 접착력이 다한 단면을 이어붙일 수 있는 뻔뻔함이 부러웠다. 4월의 스무 번째 날을 빌미로 한 여상한 내용의 연락과, 그럴듯한 이름 없이도 전과 같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만용. 의미가 모호한 선물, 그런 것을 쉽게 건넬 수 있는 안이함. 그런 부분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러므로 당신의 결함을 나는 한 마디로 씻어낼 수 없다고 똑똑히 말한다.
"있죠, 저는 선생님이 아니어도 괜찮았을 거예요."
가끔은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지금의 내가 있어 달라진다고 했지만 그때의 나는 누구여도 좋았을 것이다. 꼭 특정한 누군가일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털이 부드러운 동물이나 창가에서 조용히 날개를 접는 곤충일 수도 있었다. 커다란 위로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았다. 그저 조금, 아주 잠시 동안만 옆자리를 내어주었으면 되었음에도.
"……그래도 선생님 뿐이었어요."
하필이면 당신이 그곳에 있어서.
그것으로 외로움이 그곳에 있는 것을 알았다.

